13살 노견을 떠나보내며 (with 포포즈 부산점)

⚠️ 일말의 거짓이나 과장 없는 실제 이용 후기이므로, 장례 과정 중에 아이를 찍은 사진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 주의.


어느 노견의 장례 기록

25년 2월 20일 저녁, 우리 가족과 올해로 14년째 함께 살고 있었던 아이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가족끼리 식사를 마무리하던 도중, 노견과 함께 지내는 다른 아이가 울부짖는 소리로 알게 되었다.

서둘러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어디선가 가쁜 숨소리만 들려올 뿐 늘 앉아있던 자리에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좀 당황스러워 아이를 찾아다니자, 아이는 자신이 늘 볼일을 보는 방향의 벽면에 등을 대고 쓰러진 채로 힘겨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내쉬고 있었다.

가볍게 발작하는 그 모습은 내 눈에는 매우 이질적인 움직임이었다.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어도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일까.

힘없이 누워있는 그 모습에 또 아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과 당황함 슬픔 절망 같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차마 아이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움직임이 차츰 줄어가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이름을 불러도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급하게 가족들을 부르고, 내가 다시 돌아와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몸에 조용히 손을 올려두자 그제야 아이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얕고 빠른 숨을 내쉬는 것이 아니라, 한결 나아졌다는 듯한 깊은 한숨을 마지막으로 정말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그 시점부터는 이제 내가 아이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잘 보내주는 것 말고는.

나는 지체 없이 가족들과 함께 아이를 수습했다. 조금은 침착하고 냉정해져야 할 시간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대형견이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가족들 모두 매달려 노동해야 했지만, 다들 본인이 고생스럽단 생각보다는 가족 구성원이 죽었단 슬픔이 큰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단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몸을 한차례 닦아 모든 고생의 흔적을 지워주고, 무섭도록 차갑게 식어갈 아이의 몸이 손상되지 않도록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뒤 모든 수습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그 뒤로도 아빠는 시신 앞을 떠나지 못하고 굳어있었고, 다음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준비는 모두 내가 했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아빠가, 조용히 울었다.

그 소리가 정말 우리의 연이 다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내 기분을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남들 눈에는 어디에나 있는 흔한 시골 개처럼 보였을지라도, 우리에겐 엄연히 가족 구성원이었기에 이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


트라우마가 되다


내가 키우는 아이의 마지막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매우 병약해서 아기고양이 단계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두 살짜리 고양이였고, 그다음이 우리 집 할아버지다.

고양이가 매우 심한 발작을 거의 하루 내내 하다가 떠났던 것을 떠올리면, 아이가 맞이한 죽음은 그리 고생스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끔찍하고 슬프고 이상한 위안이다.

아직도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앞설 정도로 아이들의 죽음이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문제는 내가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생각나고, 그렇게 생각나게 되면 괴로워지는 일이 자꾸만 반복된다. 나에겐 벌써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언제까지 아이들의 죽음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며 날 괴롭힐지. 가족들 앞에선 의연한 척 웃으려 하지만 사실은 의연하지도 멀쩡하지도 않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는 하나뿐인 영상을 잘 보존해 두려고 클라우드에 옮겨두는 과정도 참 벅차고 버거웠다.

그래도 나는 의연해지고 싶다.

한 아이의 삶과 죽음,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이에 대한 기억들


우리 아이는, 다른 노견보다 정정했다고 생각한다.

이사를 한 이후로 움직이기보다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 정도로 빠르게 노쇠하긴 했지만, 우선 밥을 정말 잘 먹었다.

저 혼자 여행길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먹는 양이 부쩍 줄어들어 걱정하기는 했지만, 내가 준비해 주는 밥을 늘 맛있게 먹어주었다.

개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 나이쯤 되면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치매가 온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는 치매도 아니었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면 자기를 부른단 것을 정확히 인지했고, 앞이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모든 감각을 나에게 집중하며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이불 위에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냈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은 그렇게 앉아있어도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이틀 전부터는 외부 감각에 둔해진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저를 쓰다듬어주는 손길만큼은 여전히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서, 평소에 좀 더 많이 쓰다듬어주지 못한 게 미안할 뿐이다.

아이에겐 장난감이나 간식보다 내 손길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몰랐으니까.
더 오래 함께할 줄 알았으니까.

이 만큼 오래 살았으니까 어쩌면 앞으로도 더 살 거라고, 우리가 함께하는 일상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라고 무심결에 마음을 놓고 또 안심했을 테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뿐이었던지라, 아이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아이 시신 수습은 어떻게?


이제 눈물바람과 감성팔이는 넣어두고,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령상, 아이가 죽었을 때 시신을 처리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장례시설에 가서 장례를 치르거나 수의사를 통해 의료 폐기물로 처리하기,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배출하기가 있다.

땅에 파묻거나 임의로 화장하는 등 다른 방법을 쓰면 어떤 이유로든 불법이다. 사유지면 괜찮다 아니다도 은근히 논란이 있어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

한 마디로 장례가 가능한 시설에 데리고 가는 것 외에는 사실상 아이의 시신을 의료 폐기물과 동급의 쓰레기 취급하는 것인데, 다수의 애견과 애묘를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어이가 없다.

시대가 빠르게 변해서 이제는 다수가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을 "애완"동물이라 부르지 않고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는데, 그 "반려"동물의 최후가 고작 쓰레기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참고로 애완동물과 반려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애완 : 사랑 애(愛), 희롱할 완(玩).
인간이 사랑하고 가지고 노는 동물

반려 : 짝 반(伴), 짝 여(侶).
인생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반쪽의 짝


인식이 이 정도로 달라졌으면 법도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의 법은 아직도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서 바뀔 생각을 않는지 모르겠다.

용어도 쓸데없이 어려워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하는 몇몇에게만 유리하고 말이다.

법을 지정해도 구멍이 있으면 꼼수 부리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라지만, 동물에 대한건 전반적이고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한 아이들을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로 여기기에 죽은 이후에 그 흔적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최대한 인도적이어야 하고, 시신이 다루어질 때도 사람과 동급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묻거나 쓰레기로 버리는 짓 따위는 차마 할 수 없어 매번 다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돈이 들어가더라도 꼭 장례 절차를 거치고 있다.

동물 등록이 되어있는 한 아무렇게나 처리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장례업체 선정


우리 가족이 아이들의 장례를 치를 때마다 이용하는 곳은 포포즈 부산점으로, 우리는 두 번째 방문이니 재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고양이가 아니라 키우던 다른 개가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매우 다급하게 하게 됐는데, 업체를 고를 때 꽤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아이는 전날 밤에 갑작스레 자연사한 상태였고 그때는 계절의 영향으로 날씨가 꽤 더운 축에 속해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였다.

부패가 진행되기 전 급하게 주변에 있다고 하는 장례식장 몇 군데를 알아본 결과,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업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대형견 차별 대우도 아니고, 많은 곳이 작은 아이들의 장례를 위해서만 운영됐다. 간혹 대형견이 와도 괜찮다고 하는 업체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다.

장사야 하는 사람 마음이고, 그 업체 나름의 사정과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는 거겠지만 실로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사람 장례나 반려동물 장례나, 일부러 거액의 빚을 내서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인데 형편 되는대로 하려니 그 마저도 어렵다는 게 현실이라니 나중에는 좀 슬퍼지더라.

그렇게 실망하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온 광고가 포포즈의 광고였다.

일단 위치가 집에서 많이 멀지는 않았고, 홈페이지도 직관적으로 잘 되어있어 홈페이지를 통해 대강의 정보를 얻은 뒤 포포즈 부산점에 우선 전화 문의를 드린 결과 대형견의 장례도 가능하며 패키지 추가 없이 화장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화장 비용은 아이의 체중에 따라 추가될 수 있어 처음에 통화로 안내한 금액과 약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고객이 선택하는 부분에만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 마디로 고객한테 필요 이상으로 뭔가를 강매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상 그 통화를 통해서 이미 충성고객 확정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포포즈 부산점 입성


나의 경우는 아이가 죽은 건 20일이지만, 장례를 치른 건 23일이다.

우리 아이 가는 길, 잘 보내줘야 한다는 이유로 하늘이 도운 건지 단지 아이가 시기를 잘 맞춰서 떠난 건지 아직 날씨가 많이 추워 부패가 더디게 진행되는 날씨였다.

그래도 시신은 언젠가는 썩기에 최대한 빠르게 보내주려 애썼지만 당일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다음 날은 우리가 이동이 가능한 시간에는 예약이 꽉 차서 안 되는 듯했다.

결국 우리도 시간을 내는 것이 가능하고 장례식장도 시간이 비어있는 23일 오전으로 정했다.

우리는 재방문이다 보니 한 번의 경험이 있어 모든 게 익숙했다. 인터넷으로 일정과 시간을 예약 후 해피콜을 통해 예약을 확정하고, 예약 날짜와 시간에 맞춰 포포즈 부산점으로 향했다.




친절하게도 예약 날짜 하루 전에 카톡도 보내주신다.

지도사 분들은 우리 차가 주차장에 서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셔서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시고는, 아이를 수습해 말끔하게 염부터 해주셨다.

그 사이에 나는 지도사 한 분과 상담+계약서 작성을 끝냈고 이때도 패키지 강매나 추가적인 비용 발생은 일절 없었다.

이때 서류를 작성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우리 아이는 노견인데도 체중이 31kg나 나간다고 했다.

평소에도 다른 아이들보다 건강한 몸과 건장한 덩치를 가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살이 좀 빠졌어도 이 정도로 나갈 줄 몰랐다.

그리고 그때 지도사 분께 들은 말이 우리 아이가 나이에 비해 굉장히 동안이라는 말이었다. 우울한 와중이지만 아이에 대한 그런 칭찬을 들으니 견주는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

실제로도 우리 아이는 작년을 기점으로 안구에 가벼운 백탁이 오고, 살짝 야위어 배가 들어갔다는 것 혹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부쩍 눈두덩이가 약간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는 얼핏 봐서는 늙은 개라는 티가 거의 안 난 것이 사실이니까.

심지어 이사 오기 전까지는 집을 지키겠다며 곧잘 짖기까지 했으니, 누가 우리 애를 늙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그렇게 크고 무거운 우리 아이지만 지도사 분은 큰 동물 작은 동물을 가리지 않으시는지 우리 아이를 정말 정말 예뻐하고 소중하게 다뤄주셨다.


장례를 진행하다


포포즈에서의 모든 장례 진행 과정은 상담 중에 오갔던 대화와 계약서에 작성한 내용에 기반해서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고, 추모식도 그랬다.

추모식을 위해 지도사 두 분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실 때,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슬픔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염습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꼼꼼하고 정성스레 닦아주셨는지 오랜 실외 생활로 인해 꾀죄죄하던 아이의 털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털의 표면이 아직 살아있는 아이처럼 반짝반짝해서, 털만 보고서는 아이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잠시 보고 있자니 아이의 배가 숨을 쉬느라 오르내릴 것만 같고, 몽롱한 기분도 드는 것이 참 이상했다.

몸에서 그리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어서, 후각적으로 다른 사람의 몇 배는 예민한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는 상담할 때 결정한 대로 아이의 앞발 사이에 국화꽃을 꽂아주는 것으로 헌화한 뒤에, 우리 가족과의 인연의 끈이 되어줄 보라색 실을 묶어주는 것으로 추모 과정을 끝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털을 조금 잘라서 남겨주셨는데, 내가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아이의 여러 가지 색 털을 색깔별로 골고루 잘라주셔서 섬세함에 또 한 번 감동이었다.

사람 추모식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해 주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감사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지도사 분들과 함께하는 간단한 추모식이 끝나면 보호자와 아이만 남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주어지는데, 평균적으로 10분 내외고 요청하면 몇 분 정도의 시간을 더 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굳이 추모 시간을 더 가지지는 않았다.

10분 정도의 짧은 추모 시간만을 가진 후에 화장을 결정한 것인데, 내 욕심에 아이를 너무 오래 이승에 묶어놓기 싫어서 그랬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이를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자꾸만 미련이 생기고 아쉬울 것 같았고, 그렇게 내가 자꾸 미련 두는 모습만을 보이면 아이도 편히 떠나지 못할까 봐.

그런 나도 아이의 몸이 소각로에 들어갈 때는 이것이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오열을 하지는 않았고 매우 조용히 울었지만, 기약 없는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도사 분들이 모든 과정에 있어 우리 아이를 소중하고 정중하게 대해주셔서 나도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 혼자서였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후의 이야기


우리 아이는 덩치가 너무 커서 유골함도 1개로는 부족해서 2개가 나왔다.

대형견용 유골함이 따로 있다고는 하는데,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라 그냥 기본 함에 전달받기로 했다.

이때 유골함을 손수 보자기에 싸서 전달해 주시는데, 매듭 하나 비뚤어지고 어긋날까 봐 정말 정말 신중하게 묶으시더라.

시신을 매일 봐야 하는 직업군이면 사람인 이상 장례의 모든 과정을 쭉 진심으로 하시기도 힘들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해주셔서, 너무 고맙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사님이 매듭을 묶어주시는 동안 나는 포포즈의 마스코트인 듯 보이는 멍멍이를 만지고 있었다.

사람을 너무 잘 따르고 좋아하는 귀요미라 자꾸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찰싹 달라붙기에 안 만질 수가 없었다.


유골함을 받고 계산을 끝낸 후, 입성할 때만큼이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유골함을 묻어주기 전, 집에 잠시 보관하려고 종이가방 속의 내용물을 하나씩 빼는 중에 도대체 언제 준비하셨는지 모를 편지가 하나 나왔다.

우리 아이의 장례를 맡아주셨던 지도사님이 자필로 쓰신 편지였는데, 너무 감사한 마음에 여기에다 올려본다.



저희가 더 감사했습니다, 유** 지도사님🤭



아이에게 보낸 편지 (일부)


추모의 시간에 아이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에게 보낼 편지를 집에서 미리 써서 가져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경황은 없어도 평소 잘 먹던 간식과 함께 편지를 준비하면 아이가 좀 더 기뻐할 것 같아 밤새 울면서 썼다.

쓰다 보니 분량이 A4용지 4장을 가득 채우고도 좀 부족해서 꾸역꾸역 다 썼다.

내 경우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늘색의 색지로 나뭇잎 편지봉투를 만든 뒤에 자필로 쓴 편지를 넣어 가져갔고, 그대로 지도사 분들께 전달해 드렸더니 아이를 추모할 때 제단에다 함께 올려주셨다.

나처럼 아이에게 편지를 남기고 싶은데 좀처럼 쓰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이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썼는지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너무 개인적인 부분은 빼고 조금만 가져와봤다.

이 글은 내가 내 아이를 위해 쓴 글인 만큼, 편지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카피해서 쓰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앞부분 중략)

이미 일수로는 4600일, 시간으로는 110400시간을 함께 했지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가오는 이별을 준비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아.

우리 모두는 아직 널 보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모두들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듯해.

그런 와중에 나는 그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대답을 들을 길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날, 오전 내내 자리를 비우고 함께 있어주지 않았을 때 너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했니.

그렇게 아픈데도 함께 있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을까? 아니면 그저 아픔에 힘들어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용히 다가올 이별을 준비했을까?

그 노쇠한 몸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내 기척을 느끼고 마지막 숨을 내쉴 때는 또 무슨 생각을 했니.

여리고 착한 네가 매일매일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단 하나도 짐작할 수가 없어서, 남겨진 가족들은 그저 이런저런 생각과 추측만을 할 뿐이야.

(중략)

너보다 먼저 가버린 행복이를 보내줄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너희가 먼저 가버릴 때면 잘해줬던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이 떠올라서 생각이 많아져.

비록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운 내 자식들인데, 늘 떠나갈 때는 괴롭고 외롭게 힘들게 가는 것 같아 늘 마음이 편치 않아.

네가 옆에 있어도 옆에 있지 않아도 늘 너를 신경 쓰고 누구보다 사랑하는데, 이제는 영영 이 말을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마음 아프다.

시간의 유한함이 너무 원망스럽고,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수명만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자꾸만 들어.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일 거야, 너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존재였으니까.

어쩌면 앞으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추억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지도 몰라.

그동안 한 마리의 충견이자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충성과 행동을 우리 가족을 위해 바쳐줘서 고마웠고, 이다음에 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자.

우리 중 누군가가 널 찾으러 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 아냐.

우리는 네가 아무런 속박이나 제약도 없이, 온전히 너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네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면서 고통 없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

혹시나 아직도 우리 가족 근처에 있다면 얼른 좋은 곳으로 가.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거니까. 알겠지?

그럼, 다음에 보자.

P.S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축생과 사람의 인연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부모와 자식이든 부부의 연을 맺든 어떤 형태로 만나든 좋으니, 그저 미래의 우리가 서로 알아보고 사랑하면서 살 수 있기를.

그러니까 그날이 올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사랑해.